성령으로 육신을 죽이라

2025. 2. 28. 15:41카테고리 없음

서론

로마서 8장 12절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진리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로마서 8:12) 여기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빚진 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빚은 육신에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는 죄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이제 성령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로마서 8:12의 의미 

로마서 8장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이 말씀은 신자들이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 줍니다. 먼저, 바울은 우리를 **“빚진 자”**라고 부릅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의 빚을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원래 죄의 종이었고,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살아가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는 그 빚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셨고, 새로운 생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육신에 빚진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은 구원받은 후에도 육신의 본성을 따라 살아갑니다. 여기서 바울은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라고, 신자가 더 이상 육신의 지배 아래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육신은 죄의 본성을 상징하며, 자기중심적인 욕망과 세상의 유혹을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육신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삶과는 정반대의 방향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된 존재입니다. 육신의 지배에서 벗어나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육신의 욕망을 죽이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삶의 방식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육신에 져서”**라는 표현은 패배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더 이상 육신에 지배당하지 않고, 성령의 힘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신자들에게 **“너희는 더 이상 육신에 속한 존재가 아니며, 성령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권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그 생명을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살아갈 때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육신을 죽이라 

로마서 8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이 구절은 신자가 육신의 본성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면서, 동시에 성령의 능력으로 육신을 죽일 때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육신을 죽인다”**는 표현은 단순히 신체적인 존재를 부정하거나, 고행을 통해 신앙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신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의 본성을 의미하며, 육신을 죽인다는 것은 죄의 유혹과 자기중심적인 삶을 끊어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죄로 인해 타락하였고, 육신의 정욕과 이기적인 욕망을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며,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육신의 욕망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종종 실패로 끝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말하며,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성령은 신자 안에서 역사하시며,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따를 힘을 주십니다.

 

 

 

성령과 동행할 때 육신의 욕망은 점점 힘을 잃고, 신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육신을 죽이는 삶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지속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작은 죄를 허용하다 보면 점점 더 육신의 지배를 받게 되고, 결국 영적으로 무뎌지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이기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결국 성령으로 육신을 죽이는 삶은, 단순한 도덕적 결단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육신의 욕망을 다스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의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그 결과로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 있음을 가르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죄로 인해 타락하여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그 어떤 인간적인 노력으로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처절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 고통은 단순한 육체적 고난을 넘어서,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인 고통까지 포함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 중 하나인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단순한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단순히 선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치르신 대신 속죄의 희생이었습니다. 그분의 피로 우리는 죄의 형벌에서 자유롭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다시 화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값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격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의 힘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구원받은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와 순종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 신자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믿음 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이 구원의 선물을 소중히 여기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열매

성경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단순한 도덕적 삶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변화되는 삶임을 가르칩니다. 인간은 본래 육신의 정욕과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시며,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도록 도우십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자가 맺는 열매를 설명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자연스럽게 맺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서는, 충성, 온유, 절제라고 말합니다. 이 열매들은 단순히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나타나는 성품의 변화입니다. 먼저 사랑은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희락(기쁨)**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세상의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님 안에서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영적인 만족입니다. **화평(평안)**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마음의 평안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도 성령이 주시는 평안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음은 인내와 관련된 열매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령을 의지하면 오래 참으며 상대방을 용서하고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자비와 양성은 다른 사람을 향한 선한 마음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선을 베풀며,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충성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믿음직하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며,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려는 태도를 가집니다. 온유는 겸손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의미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집니다. 절제는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삶은 본능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으며, 오랜 시간 성령과 동행하며 순종할 때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 열매들을 맺게 되며,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은 단순히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본성을 변화시키시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되며, 그 열매를 통해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게 변화됩니다.

결론

성경은 우리에게 육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고, 육신의 욕망과 세상의 가치에 묶여 살아가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고, 성령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